전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은 집 근처의 학교로 옮겼습니다만, 몇 해 전까지는 대학로에 있는 한 여학교에서 1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쳤었죠.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10여년 전 만우절날 있었던 일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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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여학생들이 만우절이 되면 어떻게 장난 좀 쳐 보려고 발버둥들을 칩니다.
그 장난이란 것이,
교실을 바꾼다거나 (수업을 방해하므로 가장 악질적인 장난이라 생각합니다. ㅡㅡ;)
교실 바닥에 닭발이나 폭음탄 화약을 뿌려두거나 (여린 심장의 여선생님들께는 폭력이라 생각합니다. ㅡㅡ;)
일제히 자는 척하거나 등등의 치졸한 것들이어서 나름대로 "만우절 결사 수업"의 원칙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예컨대, 일제히 자는 척하는 여학생들에 대한 대응 행동요령은 아주 소박합니다.
아무 말 없이 칠판에 판서를 시작하죠.
특히, 여학생의 경우 필기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한 편이어서 3분 이내에 변절자가 하나둘 생겨나고
5분 후에는 일제 필기 모드로 돌입하게 마련입니다.
어느 해인가 만우절에 제가 담임을 맡고 있던 반의 옆반 교실로 수업을 하러 들어섰습니다.
아이들이 다들 엎드려 자고 있더군요.
("짜슥들... 이런 유치한 장난을 또... 이 정도 장난에 호락호락 넘어갈 내가 아니지, 암만!!!")
"다들 자냐?"
대답이 없습니다. 조금 이상합니다.
보통의 경우,
"네"
"잔다는 녀석들이 대답은 어떻게 꼬박꼬박 하냐?"
"잠꼬대에요."
보통 이런 시나리오로 흘러가야 정상입니다.
하여간,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련한 대응 행동요령에 따라 즉각 판서 모드로 돌입했습니다.
......
그런데, 10분여가 지났는데, 도무지 등 뒤에서 변절자들의 필기하는 기척이 느껴지지를 않는 겁니다.
중간중간 웃음을 참는 큭큭거림만 가냘프게 들릴 뿐이구요.
그렇습니다.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반장 여학생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습니다.
"우리 이제 일어나 주자!"
우리 이제 일어나자는 엄한 훈계가 아니고,
일어나 주자는, 저에 대한 동정의 표현이 느껴지는 멘트였습니다.
아이들이 부시시 일어나는 기척이 들었습니다.
도처에서 킥킥거리는 소리도 들려 오구요.
짐짓 어처구니 없는 장난에 대한 꾸지람이라도 할 양으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뜨아~~
아이들이 모두 왼쪽 이마에 점 하나 씩을 달고 있더군요.
검정 테이프를 붙인 녀석,
도시락과 함께 가져온 김을 잘라 붙인 녀석,
펜으로 칠한 녀석...
그렇습니다. 저의 클럽 닉네임인 달마시안이 괜한 것이 아닙니다.
저의 왼쪽 이마에 큰 점 하나가 있거든요.
참을성 없는 아이들이지만, 장난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10분여를 참고 참고 또 참으며
필기의 유혹까지 팽개치며
제가 뒤돌아보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이날, 만우절 결사수업의 전통을 흔쾌히 허물고
아이들과 볕 좋은 학교 후문 계단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10년도 넘은 일이니... 지금은 다들 커서 직장도 가지고
어떤 녀석은 시집도 갔을 겁니다.
문득, 훌쩍~ 커버렸을 이 아이들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