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운 사람들

허브랜드를 가다

빛을찾아서 2005. 11. 4. 22:52


어느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을이 이미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

자는 시간을 빼고 보면, 가족들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하는 한 방 식구들과 근교의 허브 농장을 찾았습니다.

야속하도록 짧기만 한 가을낮의 햇살은 이 한 컷을 마지막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늦은 방문을 꾸짖지 않고, 노랗게 물든 잎들을 간직한 채 단풍나무 한 그루가 이 사진의 배경이 되어 주었습니다.


온실로 들어서니 그윽한 허브향과 함께 싱싱함을 잃지 않은 꽃 한 송이가 우리를 반겨 줍니다.


용기가 부족한 사진가는수줍음 많은 모델에게 행여 혼이나 날새라 망원렌즈로 몰래 사진 한 장을 담았습니다.


전속 모델 해 주겠노라고 선듯 약속했던마음씨 착한이 모델은 반년여를 카메라를 보기만 하면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가을의 정취에 취해서인지 처음으로 자청해서 포즈를 취해 줍니다.

계약 맺은 바도 없습니다만, 이 모델 역시 카메라 도망질에는 초절정 고수입니다.

위의 모델분과 함께 가을에 취해 버린 것이 틀림 없습니다.


날은 어둑어둑해져가고, 조리개를 열고 ISO를 높여도 셔터 스피드 확보는 어렵습니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물리고 "수레바퀴 옆에서"란 책 제목을 떠올리며 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빵굽는 처녀"는 학구적인 모습을 연출해 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근사하게 크롭해 놓기는 했는데, 어찌 처녀의 등 뒤가 허전하기만 합니다.


그리하여, 장난끼가 동한 사진가는 시네마 라이크한 화면비와 색감과 조명을 생각하며 짓궂은 멘트 하나를 사진에 넣었습니다.

음... 칸느에서 보는 어느 여배우 못지 않습니다. 부디 내년에는 빈자리를 메꾸시기 바랍니다.

"애정을 가진 대상"을 찍는 행복한 사진가는 흡족한 사진을 남기는 모양입니다.

짧아서 아쉽기만 한늦가을의 저녁이었지만, 우리 모두는 모처럼 정말 행복했습니다.